Top
로그인 | 회원가입 | 예약확인

플래닛월드투어

  • 커뮤니티
  • Community
고객센터
070-7124-1400
Fax 02-6919-2445
touralbum@naver.com
AM 09:00 ~ PM 18:00
(점심시간 12시~13시)
토,일요일,공휴일은 휴무입니다.
입금계좌안내
한국씨티은행
179-00393-243-01
예금주 : (주)플래닛월드투어
예약금은 요청일 기준 3일 이내에
입금해 주셔야 실예약으로 확정
됩니다.
여행블로그
[기타]  국내여행지 추천 - 강릉 허난설헌, 허균 기념관
작성자 : 한재철 등록일 : 2022-08-25 조회수 : 225

한반도에 자리한 우리민족은 고구려 700, 신라 1000, 고려 500, 조선 500년등 왕조의 역사는 다른 민족의 왕조에 비해 길게 유지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긴왕조를 유지한 비결은 최고권력자의 능력도 중요 했지만 수많은 인재들이 참여한 국가운영 체제가 잘 작동하였다는 것은 방증하는 증거가 된다.

 


 

 

국가조직은 국가의 최고 인재들의 참여로 흥망을 격으며 작동하게 된다. 교과서속 등장 인물은 주로 시대 정치적 승자편에서 국정에 참여한 인물들이나 반대편에서 권력을 견제하다 사라진 인재들 또한 많이 있었다 이들은 시대에 따라 다시 평가 받아야 한다.

 


 

홍길동전 저자 허균은 시대의 천재로 불렸으나 끝내는 왕조의 반역자로 변소의 기회도 없이 능지처참 당하고 많은 저작물들은 소각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지금 세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한반도 주변의 정치적 환경이 변하고 있고 대한민국 또한 법가들이 정치적 주도권을 쥐고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허균이 주장했던 신분, 사상, 학문의 자유 정치사상은 흔들리는 세태속 마음의 중심을 잡아 주는 추가 된다.

 

허균은 성소부부고(惺所覆)에서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바는 오직 백성일 뿐이다.(天下之所可畏者)” 라고 주장하며 백성을 항민(恒民원민(怨民호민(豪民)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호민은 고대사회에서 촌락에 사는 힘이 있는 백성을 가리키던 말이다.그에 의하면, 항민은 일정한 생활을 영위하는 백성들로 자기의 권리나 이익을 주장할 의식이 없이 법을 받들면서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면서 얽매인 채 사는 사람들이다. 원민은 수탈당하는 계급이라는 점에서 항민과 마찬가지이나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윗사람을 탓하고 원망한다.그러나 이들은 원망하는 데에 그칠 뿐이다. 그러므로 항민과 원민은 그렇게 두려운 존재가 못 된다. 참으로 두려운 것은 호민이다. 호민은 남모르게 딴마음을 품고 틈만 엿보다가 시기가 오면 일어나는 사람들이다.그들은 자기가 받는 부당한 대우와 사회의 부조리에 도전하는 무리들이다. 호민이 반기를 들고 일어나면 원민들이 소리만 듣고도 저절로 모여들고, 항민들도 또한 살기를 구해서 따라 일어서게 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허균의 아버지 초당(草堂) 허엽(許曄, 1517 12 29 ~ 1580 2 4)는 나식(羅湜), 이여(), 서경덕과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과거에 급제 다양한 관직을 수행하여 경상도 관찰사까지 올랐다. 사신으로 명나라를 방문했다. 자식은 3 1녀를 두었다. 강릉초당 두부도 바로 허균 아버지가 시조이다.

 

청주 한씨(淸州韓氏)씨 사이에 얻은 첫째아들 공언(功彦) 허성(許筬, 1548~1612)은 임진왜란 직전 조선통신사 서장관으로 일본방문 하는등 활발히 조정에서 활동 관직은 이조판서까지 지냈다.

첫째 부인이 죽은후 강릉 김씨(江陵金氏)사이에 낳은 둘째아들 하곡(荷谷) 허봉(, 1551~1588)은 성절사 서정관으로 명나라 방문 관직은 통훈대부등을 하였다.

 

첫딸 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 1563 ~ 1589 3 19)는 조선시대 여류시인으로 명나라와 왜까지 이름이 알려진 인물로 김성립(金誠立)과 결혼하였으나 불행한 시집생활을 한탄하며 요절 하였다.

 

마지막 셋째아들이 교산(蛟山) 허균(許筠, 1569 11 3~1618 8 24)으로 관직은 의정부좌참찬 겸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허균은 집안의 분위기로 어려서 부터 공부 했으며 총명함으로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다양한 서적을 접하며 지적호기심이 강하였고 명나라 사신으로 가서 많은 서적을 들여 왔으며 우리나라에 최초로 천주교12단 기도문을 가저왔다. 허균은 교과서에 얽매여 있던 조선 주류 성리학적 사상 보다는 백성들 삶속에 필요한 실용적인 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이다. 허균은 과거에 여러 번 장원급제한 조선시대 천재중 한명으로 1594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검열(檢閱)•세자시강원 설서(世子侍講院說書)’ 3품 첨지중추부사, 3품 형조참의, 2품 의정부 좌참찬등 조정의 요직을 지냈으나 1618(광해군 10) 8 10일 남대문에 붙은 벽서 역모에 휘말려 1618 8 24 50세 능지처참 거열형으로 죽었다.

 

허균을 아는 선비들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불여세합(不與世合) 성격 소유자라고 평가하였다. 두번에 걸처 사신단으로 명나라에 다녀 왔으며 임진왜란전 조선통신사 종사관으로 다녀온 형 허성으로부터 일본의 다양한 문물지식을 배웠다.

 

청성(靑城)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이 당대 풍속과 시대 풍경을 담고 있는 일화을 남긴 《청성잡기(靑城雜記)》에 남녀 간의 정욕은 하늘이 주신 것이요/인륜과 기강을 분별하는 것은/성인에 가르침이다/나는 성인의 가르침을 어길지언정 하늘이 내려주신 본성을 어길 수는 없다. (男女情欲,天也,倫紀分別,聖人之敎也,我則從天而不敢從聖人)”는 허균의 말이 전한다.

 


 

 

사경득답 추천 여행서적- 허균평전, 시대를 거역한 격정과 파란의 생애

https://blog.naver.com/touralbum/222659513448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의 반교문 역적의 우두머리 허균은 성품이 사납고 행실이 개돼지와 같았다. 윤리를 어지럽히고 음란을 자행하여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전연 없었으며, 윤기를 멸시하고 상례(喪禮)를 폐지하여 스스로 자식의 도리를 끊었다.” 허균과 갈등 관계에 있던 기자헌은예로부터 형신(刑訊)도 하지 않고 결안 (結案)도 받지 않은 채 단지 공초만 받고 사형으로 나간 죄인은 없었으니 훗날 반드시 이론이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죄인은 심문, 자백, 조율(결안)을 거처 의정부를 통해 왕의 처분결제를 받고 사형을 집행했으나 허균의 경우는 그러한 과정이 생락된 것이다

 

부안의 기녀 매창(梅窓) 이계랑(李桂娘 1573~1610)이 허균을 만난후 남긴시

 

님 떠날 내일 밤이야 짧고 짧아지더라도

님 모신 오늘밤만은 길고 길어지이다.

닭 소리 들리고 날은 새려는데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네.<기생매창>

 

허균이 매창의 사망소식을 들은후 남긴시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하고

청아한 노래는 구름도 멈추게 하네,

복숭아를 훔친 죄로 인간 세상에 내려오더니

불사약을 훔쳐 인간 무리를 두고 떠났네,

부용꽃 휘장엔 등불이 어둑하고

비취색 치마엔 향내 아직 남았는데,

이듬해 복사꽃 필 때쯤이면

그 누구가 설도의 무덤을 찾아주려나.<허균 哀桂娘>

 


 



 


 

 

허균의 누나 허날설헌 또한 뛰어난 천재로 많은 시를 남겼으나 중국이 아닌 조선에서 태어난 것, 남자가 아닌 여자로 태어난 것, 그리고 김성립의 처가 된 것 세가지를 원망했다. 그녀의 시는 중국에 까지 알려진 유명인 이었으나 삶은 불행하여 짧은 생을 마감하며 동생 허균에게 모든 시를 불태워 없애라고 부탁 했으나 허균은 그녀의 남겨진 시를 모아 210여수의 작품을 허설남시집(蘭雪軒詩集)으로 남겼다.

 

허날설헌 哭子 곡자

去年喪愛女 今年喪愛子 거년상애녀 금년상애자

지난해 귀여운 딸아이 여의고 올해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哀哀廣陵土 雙墳相對起 애애광릉토 쌍분상대기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 땅이여 두 무덤 나란히 마주하고 있구나.

蕭蕭白楊風 鬼火明松楸 소소백양풍 귀화명송추

사시나무엔 쓸쓸한 바람 불고 숲속 도깨비불 희미하게 빛나네.

紙錢招汝魄 玄酒奠汝丘 지전초여혼 현주존여구

종이돈 살라 너희 넋을 부르며 무덤에 술잔 따르며 제를 올리네.

應知弟兄魂 夜夜相追遊 응지제형혼 야야상추유

너희 넋이야 오누인 줄 알고 밤마다 서로 어울려 놀겠지.

縱有腹中孩 安可冀長成 종유복중해 안가분장성

비록 아기를 다시 가졌다고 한들 어찌 잘 자라길 바랄 수 있으리오.

浪吟黃臺詞 血泣悲呑聲 낭음황대사 혈읍비탄성

부질없이 황대사를 읊조리다 애끓는 피눈물에 목이 메는구나.

 

플래닛월드투어는 사경득답(史耕得答) 역사테마여행 프로그램을 운영중입니다사경득답은 역사적 배경지를 바탕으로 여행코스를 기획한 “역사를 통해 미래의 답을 얻는다!”는 역사테마 여행프로그램입니다문의 주시면 다양한 역사테마 여행상품을 기획해 드립니다.




 

구글 스토에서 “포틀라스”를 설치 하시면 여행코스 및 여행사진 다양한 여행지 모습을 사진과 지도로 감상하고 공유하며 찾아 가실 수 있습니다.

포틀라스 설치 https://goo.gl/BqjiSd

 


글로벌 여행네트워크

플래닛월드투어
http://www.planetworldtour.com


목록
+ 한글명 + 비밀번호 글자가 잘 안보이시면 클릭하세요 옆의 글자를 입력해주세요.
상호명 : (주)플래닛월드투어   |   대표이사 : 한재철    |   사업자등록번호 : 104-86-46393   |   통신판매업신고 : 제2020-서울종로-1783호   |   관광사업등록증 : 제2020-000042호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5길 25, 하나로빌딩 808호-810호 (인사동)   |   Tel 070-7124-1400   |   Fax 02-6919-2445
개인정보보호관리책임자 : 한재철  (touralbu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