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와드 카터와 카네본 경 (上)

- 왕들의 골짜기. 그 이름 부터가 로맨틱한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고대 이집트의 신비 가운데 이처럼 절실하게 사람의 정서를 뒤흔들어 놓는 고장도 없다. [하와드 카터] -

우리가 알고 있듯이 파라오들은 자기들의 무덤을 일반인들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거대하고도 웅장하게 만들었다. 고 왕국시대의 이집트의 무덤들은 나일강 하류의 삼각주 일대에 파리미드 형태로 , 그리고 중 왕국시대 이후로는 수도가 테베(지금의 룩소르)로 옮겨지고 나서 테베의 나일강 서안 골짜기에 그들의 지하무덤을 축조했다. 이 곳은 역대 왕들의 무덤이 많이 분포돼 있어서,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지하무덤 도시*, 또는 왕가의 계곡(The avlley of Kings)이라고 불렸다.
왕의 무덤은 금은 보화가 묻힌 곳이고 따라서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어왔었다.
고대 이집트의 왕묘의 역사는 기실 도굴의 역사와 병행하는 것으로써, 선대 왕들의 묘지를 후대 왕들이 묻고 또 훔치는 일이 되풀이되는 셈이었다. 그래서 왕묘를 지하에 만들어 도굴을 방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훼손되지 않고 원래 모습대로 남은 왕묘는 이제까지 한 곳도 없었다. 가장 완전무결하게 발굴되었다는 투탄카문 왕의 무덤에도 그 시대의 도굴꾼들이 침입한 적이 있었다.

이곳 지하분묘에 처음 묻힌 왕은 투트모스 1세였다. (나일강 하류의 피라미드 분묘들이 샅샅이 도굴되는 것을 못마땅해 했던 투트모스 1세는 새로운 네크로폴리스를 여기에 건설했고 그 자신이 처음 묻혔다. 이후 왕이며 왕비,그리고 고관들의 분묘까지 60기 이상의 지하분묘가 이곳에 묻혀있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왕들의 골짜기에서 명상에 잠겨있던 카터의 마음의 눈에는 삼천 삼백 년 전의 광경이 되살아나 바로 눈 앞에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투탄카문 왕묘의 발굴은 카나본(Lord Carnarvon)의 관대함과 카터(Carter)의 집념으로 이루어진 쾌거라 할 수 있다.

카나본 경은 영국의 명문 출신으로 1887년 케임브리지에서 수학한다. 그리고 그는 거의 7년 동안 세계를 일주하는 여행을 즐겼다. 그는 대양국의 후예답게 4 대양을 누비는 정렬적인 모험가였다. 29세에 결혼 하여 두 남매를 두었고, 딸 에브린은 아버지를 끝까지 보살핀다.1902년 독일여행 중에 교통사고를 당해 발과 가슴, 그리고 얼굴 밑에 중상을 입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가문의 전통을 이어 정치가가 되려는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고 성격도 크게 변한다. 운동과 여행을 즐기던 그가 사려깊고 판단력 있는 인격으로 변한 것이다. 추운 런던의 겨울을 피해 당시 영국의 보호하에 있던 따뜻한 이집트로 요양을 떠나게 된다. 이것이 1907년 그가 이집트와 만나고 카터를 발견하게 되는 실마리가 된다. 그는 한 사람의 상당한 이집트의 전문가가 되며 말년의 모든 관심을 이집트 문명에 쏟게 된다.

한 편 카터는 1873년 영국 켄싱턴의 한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가정에서 아홉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다. 수채화가였던 아버지는 그를 학교에 보낼 만큼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림을 잘 그리는 아들, 카터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가정교사가 되어야 했다. 1981년 카이로에서 돌아온 뉴베리라는 이집트 학자가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모사하는 일을 17 살짜리 카터에게 맡긴다. 카터는 이를 훌륭하게 베껴낸다.
카터의 재능에 만족한 뉴베리는 1890년 18세의 카터를 데리고 이집트 고고학의 재조사에 나선다. 이것이 그의 생애의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 어린 카터의 마음속에 잠자던 신비로운 호기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카이로 박물관의 유물국장이었던 가스톤 마스페로(Gaston Maspero)도 어린 카터의 재능에 감탄하여 그에게 아낌없는 지도를 베푼다. 공적인 교육을 제대로 받은 일이 없는데도 그의 지적 잠재력은 비를 맞은 죽순처럼 자라고 히에로글리프에 대한 그의 지식은 점차 전문가적인 수준으로 향상된다.

마스페로는 이러한 그의 열의와 성실성 그리고 침착성과 재능 등을 높이 평가하게 되며 1899년 스물 다섯 살의 카터를 나일강 상류지방과 누비아 지방 유적 수석감독관으로 임명한다. 그의 지적 관심은 나날이 깊어지며 그의 감독관 생활은 1903 년까지 계속된다. 1981 년에서 1988 년사이 카터는 영국의 이집트 학자 페트리(Petrie)에게서 데르 엘 바하리 사원(핫셒트 슈트 여왕 장제전) 조사를 도운 일이 있었고 이곳의 벽화와 부조들을 수채화로 기록한 바가 있었다. 카터는 Petrie를 무척 존경하고 있었다. 이 무렵 술에 취한 프랑스인들이 관광안내를 요구하면서 프랑스 여성 견습생 3 명이 묵고 있는 숙소에 침입하여 난동을 부렸다. 페트리는 이를 감독관인 카터에게 알렸고 인부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카터와 취객들과의 사이에 옥신각신이 벌어졌다. 끝내는 한 프랑스인이 뻗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적반하장으로 여성들을 희롱한 주제에 카터에게 사과를 요구해왔다. 카터는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카터를 아끼던 마스페로는, “영국과 프랑스의 우정을 생각해서라도 그까짓 공식 사과문 하나 적어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카터를 설득했지만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카터의 대답은 ‘노우!’ 였다. 마스페로의 입장은 매우 난처하게 되었다. 마스페로는 애석하지만 유능하고 성실한 일꾼이자 오랜 친구인 카터를 파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로부터 4 년간 카터는 온갖 고생을 하게 된다.

1907년 마스페로 국장은 여전히 식지않은 우정을 가지고 카터를 찾아와 카너본 백작이라는 한 영국인 신사를 소개하면서 그의 협력자가 되어줄 것을 당부한다.
그로부터 1922 년까지 15년간 이 두 사람의 집념과 관대함이 작용하여 세기의 발굴인, 투탄카문 왕묘의 발굴이 성사된다.
**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야 할 것은, 당시 이집트는 영국의 보호 하에 있었는데 그 유물국장들은 프랑스인이었다. 앞서 나폴레옹과 샹폴레옹의 이집트와의 관계를 말한 바 있듯이, 프랑스인들이 이집트문명에 기여한 바는 실로 막대하였다. ‘페리낭드 리셉스(V. Reseps)는 이집트의 미래를 열었고, 마리에트( Marriett)는 이집트를 위해서 과거를 열었다.’ 리셉스는 수에즈운하를 개통하였고, 마리에트는 이집트 고고학의 체계를 세운 학자였다. 마스페로는 바로 마리에트 선임국장의 후임이 되는 셈이다.

1912년 미국의 고고학자 데이비스는 10년간의 발굴성과 보고서에서, “골짜기는 더 이상 파볼 곳이 없다.” 라고 단정했다. 발굴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얘기다. 그의 발굴허가 유효기간은 1914 년까지였다. 이 허가서는 이집트 정부의 유물관리가 감독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그래서 당시의 수석 감독이었던 카터는 발굴현장에 여러 번 입회했으며 발굴작업에도 직접 참여했었다. 이러한 경험이 ‘왕들의 골짜기’ 안에 분명히 투탄카문이 잠자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는지도 모른다.
카터는 데이비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카터가 데이비스를 믿지 않는데에는 몇 가지 징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909년 데이비스는 람세스 4세 왕묘의 발굴현장 근처 바위 밑에서 히에로글리프가 적힌 항아리 하나를 발굴했는데, 그 속에 투탄카문의 기호가 새겨진 찰흙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3년 뒤 같은 장소에서 투탄카문의 기호로 보이는 술잔과 얇은 금관이 발견되었는데도, 데이비스는 이를 무시해 버렸다.
당시 왕들의 골짜기는 천태만상의 발굴 자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마치 무절제한 장터처럼 법석거리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발굴 자들의 선조는 바로 이집트 왕묘의 보물들을 무작정 노략질해서 팔아먹는 현지인 도굴꾼들이었다. 심지어 고대 이집트의 문서에도 이들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카터가 보니, 데이비스는 이 귀중한 증거물들을 팽개쳐버리더라는 것이다. 총명한 카터는 이러한 광경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카터의 집념은 서서히 그러나 구체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데이비스의 발굴허가 만료기간인 1914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下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