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와드 카터와 카네본 경 (下)

- 왕들의 골짜기. 그 이름부터가 로맨틱한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고대 이집트의 신비 가운데 이처럼 절실하게 사람의 정서를 뒤흔들어 놓는 고장도 없다. [하와드 카터] -

1914년, 데이비스는 기간이 만료된 ‘왕들의 골짜기’ 발굴 권을 이집트 정부에 반납했다. 카터가 은인자중 기다렸던 순간이 드디어 온 것이다.
그는 지체 없이 허가를 신청했다. 그리고 허가가 나왔다.
허가서를 손에 쥔 카터의 심중에는 이미 투탄카문을 발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가증을 손에 쥐고 들떠 있는 카터를 바라보면서, 마스페로 국장은 매우 근심스런 표정으로
“ 여보게 카터. 나도 데이비스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네. 공연히 헛수고를 하는 게 아닌지….”

그러나 발굴은 곧바로 시작할 수가 없었다.
제 1차 대전이 터진 것이다. 전쟁은 1917년 이나 돼서 끝나가고 있었다.
군무에서 풀려난 카터는 그 해 늦가을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착수한다. 룩소르 지방의 살인적인 더위 때문에 늦가을부터 다음해 봄까지만 발굴작업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18 세에 이집트 온 카터는 이제 44세의 장년이었다.
한창 일할 나이였고 지구력을 과시할 수 있는 40대의 현역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 동안 이집트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정밀하고도 치밀한 발굴계획을 세웠으며 조직적인 작업계획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카터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발굴작업 그 자체보다 더 이상 파볼 곳이 없다는 여론, 곧 심리적인 압박이었다. 대부분의 이집트 관계자들이 카나본 백작을 가리켜, ‘얼빠진 사람, 미친 사람’ 이라고 소근거렸다는 것이 사실로 전해진다.
사실 데이비스나 마스페로는 카터에게는 모두 대 선배였고, 그들의 견해라는 것이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근거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카터의 심리적 압박은 더욱 컸다. 카터의 발굴작업은 자칫 환상적이고 직성적인 괴상한 행동처럼 여겨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카터의 집념과 카나본의 관대한 이해심은 결국 큰 일을 저지르고 만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나간다. 작업은 이를 데 없이 조직적이어서 마치 비단처럼 섬세하게 짜여 진 계획표에 따라 하나하나 차질 없이 진척되어 나갔다고 한다. 마치 포병부대가 목표물을 겨냥해서 집중포화를 퍼붓는 것 같은 원리로 진행됐으며, 조금의 편차도 없었으며 당초의 계획이 변경되는 일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왕들의 골짜기’ 지표의 하나하나가 치밀하고 조심스럽게 벗겨지고 있었다. 그것은 투탄카문이라는 역사상의 인물의 ‘죽음형식’을 통해서 카터라는 현존하는 역사상의 인물의 ‘삶의 형식’을 환기해보려는 처절한 작업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카터를 카나본 백작이 돕고 있었던 것이다. 작업은 막대한 장비와 수백 명의 인부를 동원하는 대사업이었다. 발굴작업은 6년이나 계속 되었고 파낸 모래와 바위 그리고 흙만 해도 2만 톤이나 쌓였다.

카나본 경의 재원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었다.
‘’데이비스 교수가 말했던 것처럼 골짜기는 거의 발굴되어 버린 지도 모르겠네. 아무래도 이쯤 해서 포기하는 게 옳지 않겠나?” 그는 신사답게 말하면서 더 이상 투자를 않겠다는 암시를 보였다. 카터는 대답했다.
“꼭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지 않으시렵니까? 아직 한 군데 손을 대지 않은 곳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포기하면 이제까지의 노력이 너무 허무합니다. 투자를 포기하시더라도 저는 혼자의 힘 만으로라도 이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카나본은 동의했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주석을 빼놓지 않았다.

1922년 10월 28일, 카나본과 헤어진 카터는 런던에서 테베로 되돌아왔다.
11월 초하루부터 작업은 다시 시작되었다.
11월 4일 아침, 카터가 작업현장으로 나와보니 인부들이 손을 놓고 모두 엉거주춤 하고 있었다. 무언가 있었다.
직감적으로 뇌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 바위를 계단처럼 쪼아낸 것이 드러나 있었다. 여기 까지 파낸 인부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카터는 신중했다. 이것은 왕들의 골짜기에서 자주 목격했던 형태였기 때문이었다.
투트모스 3세의 묘에서도 그러했다. 미완성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돌계단을 하나하나 파내는 작업은 11월 6일까지 계속되었고 열네 개의 계단까지 파 내려갔을 때 거기에 찰흙과 석회 그리고 짚으라기를 반죽해서 바른 벽이 나타났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벽이었다.

묘의 주인을 나타내는 인장은 안 보였지만 이곳이 왕실의 묘라는 표시가 돼 있고 재칼(Jackal) 한 마리. 그리고 아홉 명의 노예가 그려져 있었다.
이곳은 매우 신분이 높은 사람의 묘가 분명하다고 카터는 판단했다.
그러나 여기가 정말 ‘투탄카문의 무덤일까……’ 벽을 당장 뚫고 들어가고 싶은 격렬한 충동을 느꼈지만, 그의 냉철하고 지성적인 인격이 이를 만류했다.
이 벽을 뚫을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카나본 백작이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즉각 런던에 전보를 쳤다

‘드디어. 골짜기에서 놀라운 발견. 온전한 인장이 새겨진 훌륭한 무덤, 백작님이 도착하실 때까지 폐쇄함, 축하드림’

‘드디어’ 라는 영어, ‘At the last’ 속에 담긴, 그 때의 극도로 흥분 상태인 카터의 심경이 어떠했을 지를 우리는 가히 상상이 간다. 그의 전보에는’놀라운 발견’ 이라고만 되어 있는데 그가 좀더 벽에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폈더라면, 거기에 ‘네프케프루라’ 라고 적힌 투탄카문의 의식명(儀式名)이 카르투슈-왕의 이름을 적어 넣는 타원형의 곽- 안에 적혀있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고, 놀라운 발견이라는 문구 대신 ‘투탄카문의 묘를 발견’ 이라는 전문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여행수단이 기차나 마차, 그리고 선편뿐이었던 때라서 카나본 백작이 이집트에 도착하기까지는 며칠을 더 기다려야 했다. 카터는 가장 믿을만한 인부들만 골라서 밤낮으로 무덤을 지킬 것을 명하고, 영국인 고고학자 캘린더에게 감독을 부탁하고, 자기는 다음날 카이로에 올라와 발굴용 자재를 준비했다.

11월 23일, 카나본 백작이 그의 딸 에블린 여사와 함께 도착했다.
11월 24일에는 계단이 모두 파내어 졌다. 전부 16 계단이었다.
11월 25일 드디어 계단 밑의 첫 번째 벽이 뚫렸다. 거기에는 비스듬한 경사면이 시작되고 있었으며 먼지와 잡다한 것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8 m 가량의 이 통로를 말끔히 청소한 다음,
11월 26일을 맞이하게 된다.
‘내가 이제까지 경험한 가장 벅찬 감동의 날, 이후로 두 번 다시 결코 이와 비슷한 일을 만난 수 없을 그런 날’ 이 밝아 온 것이다. 이날 오후 통로 끝에서 두 번째 벽면이 나타났다.

조심스럽게 이 벽면을 뚫는 작업이 시작됐으며 얼마간의 공간이 벌려진 사이로 카터는 왼손을 넣어 보았다.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손에 닿는 것은 없었다. 촛불을 넣어 보았다. 혹시 가스가 차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옆에서는 카나본 백작과 과 에블린 여사가 심각한 얼굴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 때 뚫린 구멍으로 후끈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차츰 눈이 어둠에 익어가면서 그 안의 광경이 카터의 눈에 비치기 시작했다. 이상한 동물상, 조각품, 가구 같은 것들…… 모든 것들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 여보게 카터, 뭐가 좀 보이는 게 있는가?” 더 이상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던 카나본 백작이 말문을 열었다.
“ 네, 아주 기가 막힌 것 들이 … (Yes, What the wonderful things …) ” 카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벅찬 감동으로 그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투탄카문의 왕묘(王廟)는 전실-前室, 현실-玄室, 보고-寶庫, 그리고 별실-別室로 되어 있었다. 카터가 두 번째 벽구멍을 통해서 본 ‘아주 기가 막힌’ 것들은 전실의 광경이었다. 카터의 발굴작업은 매우 치밀하고 조직적이며 신중하게 진행되었다.
왕묘에서 발굴한 유품들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그 대부분을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으로 보내는 데는 십 년이 더 걸릴 작업이었다.

트로이의 유적을 마구잡이로 파헤쳤던 ‘슐레이만’ 이라던가, 이집트의 금은보화만을 탐내어 무작정 파헤치고 파괴하면서, 발굴된 유품의 반 이상을 본국으로 수송하기에 바빴던( *실제 발굴허가서에는 발굴된 유품의 반을 발굴자가 소유한다는 계약이 있었음), 베르소니와 같은 탐험가들과는 달리 투탄카문의 왕묘에서 발굴한 모든 유물을 이집트 박물관에 헌납한 카터와 카나본 백작은, 진정한 인류문명의 발굴 자였고, 해설자였으며, 그들은 역사의 주체로서의 인간임을 자각하고 있었던 이성적인 인물들이었다.

카터와 카나본이 처음 들어선 곳은 왕묘의 前室이었으며 이곳에는 약 650점에 이르는 부장품들이 있었다. 가구, 장신구, 공물, 보석상자, 침대, 마차, 흉상 등, 심지어는 파리채까지 있었다. 그러나 정작 왕의 유해를 담은 황금관은 보이지를 않았다.
전실의 오른편에 봉인한 벽이 있었고, 한 쌍의 목상이 파수꾼처럼 서있는데 이 벽을 허물면 그 뒤에는 왕의 관이 있는 玄室이 나타날 것임이 분명했다.
천신만고 끝에 발견한 투탄카문의 묘였기에, 사람들은 카터가 곧장 벽을 허물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터는 태연했다. 전실 부장품들에 하나하나 일련 번호를 붙이고 목록을 만들고 촬영한 다음 정성껏 포장해서 카이로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작 현실의 벽을 허문 것은 그로부터 석 달 뒤인 1923년 2월 17일이었다.

이 ‘세기의 현장’에 입회한 사람들은 카나본 백작과 그의 딸 에블린 여사, 마스페로의 후임인 ‘라카우’(유물국장), 그리고 이집트 관리들과 세계의 저명한 학자와 미술관 관계자 등 20명이었다고 한다.

현실의 벽이 허물어지자 현실을 거의 가득 채우는 황금색의 큰 감실(龕室)이 나타났다. 겹겹이 포개어진 순금의 두터운 관 속에, 삼천삼백 년 전에 잠들었던 그 모습 그대로 투탄카문은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금관 위에는 돋을새김으로 된 히에로글리프(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유능한 히에로글리프 학자이기도 했던 카터는, 그 문구를 다음과같이 해석하고 있다.

" 나는 어제를 봤다. 그래서 내일을 안다."

그렇다. 투탄카문 왕은 삼천삼백 년 뒤인 20세기의 인류문명을 그 당시에 벌써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다시 카터에게도 적용되는 인간의 언어였다.

카터는 세 권으로 된 ‘발굴 기’를 출간한 다음 1939년 향년 66세로 세상을 떴다.

참고문헌 : 미술평론가 유준상의 글 - “투탄카문 왕묘의 발굴’ - 1979년 월간 ‘신미술’ 가을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