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반긴 것은 1900년 대까지 온전했던 ‘샬레(Saleh)’ 성체였다.
인간의 힘이 위대하다 한들 자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몇 차례의 장대비에 그 시가지는 무너지고 마치 유령의 성처럼 되어 있었다. 정말 김빠진 맥주 맛 같은 기분이 되었다.
실망하는 우리 일행을 위해 수박 등 과일을 좀 사고 택시를 타기로 했다.
‘Taxi, Welcome’ 등의 팻말을 수레에 서 부쳐놓고 앞에는 달랑 당나귀 한 마리다.
어린이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걸 보고 우리는 금새 기분이 좋아졌다.
나귀가 끄는 수레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샬레’ 주변을 한 시간 가량 둘러 보았다.
‘어떤 베드윈이 국경에서 가만히 살펴보니 UN이라고 쓰인 차는 검문도 받지 않고 아무 곳이나 자유자제로 다니는 것을 보고, 당나귀 엉덩이에 왼쪽엔 U, 오른 쪽엔 N이라고 써넣고 다닌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런 나귀를 우리뿐만이 아니고 이 곳 주민들도 타고 다닌다. 어디나 갈 수 있는 ‘UN’ 택시다.
‘바하리아’ 에서부터 오는 여정은 스릴 있고 고단했다. 그래서 ‘비르 와디’ 지역과 비슷한 ‘샤와엠’으로 왔다. 여행객들을 위한 휴식공간도 있고 화장실도 있는 곳이고, 더더구나 수영복을 입고 온천에 들어갈 수 도 있었다. 그것도 무료로 ……
옷을 갈아 입고 온천 속으로 뛰어들었다. 천연 온탕이라 물은 적당히 뜨거웠고 물이 좋아서 비누를 쓰지 않아도몸에 묻어있던 모래먼지를 씻어내는 데는 최고였다.
저녁 식사가 준비될 때까지 온천 욕을 즐겼다.

저녁을 먹고나서 우리는 모기 떼를 피해 다시 ‘사하라<사막>로 이동했다. 백 사막에서와 같이 그렇게 잠자리에 들었다.
바람이 불어 밤 새도록 사르락, 사르락, 또도록, 또도록, 모래가 날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설마 밤 사이에 우리를 묻어 버리지는 않겠지!
오늘 마지막 사막의 밤을 우리 모두는 ‘카라반’이 되어….

밤새도록 모래바람 소리에 잠을 뒤척이다 일어났다. 일행들은 그 동안의 여로에 피곤했던지 아직 잠들어 있다. 6월인데도 사하라의 밤은 한기를 느끼게 한다.
시트 밑으로 손을 넣어보니 따뜻한 모래온기가 전해온다.

사하라는 몇 억겁의 시간이 지나서 이런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육지가 바다 되고 그 바다가 육지 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그런 까마득한 시간 속에서 우리 인간들의 삶은 이어지고 이어져서 오늘 날 눈부신 과학시대에 살고 있는데 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걸까?
사막은 인간 최후의 안식처란다. 이 사하라는 모든 문명을 거부한 채 이렇게 태고 적 모습으로 허허한 알몸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며 우리들에게 그렇게 손을 펴라 한다. 이 시간 오직 “나” 하나로 오롯이 사하라와 함께한다.
일행들의 숨소리가 고르고 고치 속에 들어 있는 누에처럼 자고 있다.
사하라를 둘러본다. 나를 본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적막강산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있다. 사하라와 하나가 된다. 외롭고 초라해서 눈물이 날 것 같은데 또한 알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이 온 몸을 감싼다.
서울에 있는 자식들을 생각해 본다.
– 행복 하거라.-

25시의 작가 ‘게오르규’ 는,’ 존재! 그 자체로써 위대한 창조가 가능하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집트 에서 살아온 26년, 그 지난 세월을 뒤돌아 본다.
이제는 더 잃을 것도 없고 더 바랄 것도 없는 마무리할 시간에 접어들었는데 거창한 것을 찾는다면 이 사하라에서는 바보 짓이다.
무심한 채 동녘을 바라본다. 사하라도 나와 함께 동녘을 본다.
그러면서 바람 따라 바람 따라 저희들끼리 도란거리며 어디로 인지 달려간다.
품위 있는 소양 같은 것은 다 버린 체 알 몸으로 달려간다. 품위 없게 자고 있어도 일행의 모습이 아름답다. 자는 모습에서는 꾸밈이 없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한마디 불평 없이 그저 감사하고 행복해 하며 나를 따라오는 우리 일행이 아름답다.
날이 새면 이 사하라에서 느꼈던 그 따뜻함이 그대로 묻어날 것만 같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인 유치환의 시가 생각난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 보다 행복 하느니라.
……………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서 시달리거나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로 엉클어 진 인정의 밭에서
………..
설령 이것이 이 세상과 마지막 인사가 될 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 하였네라.

동트는 사하라의 모습을 보라고 일행을 깨운다.
밤새 모래가 머리칼, 귓속, 얼굴 전체를 훑고 지나갔다.
“ 모래들이 들려주는 사하라 얘기를 잘 들었어요?’라고 물으니 그 중 한 명이,”언제 얘기를 해 주었느냐?” 정색을 하는 통에 모두들 웃었다.
사하라에 해가 뜬다. 오늘 이 해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또 일상에 묻히겠지. 일행과 함께 하느님의 위대함을 묵상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어느 사이 우리는 행복한 나그네들이 되어있었다. 호텔방에서 편안하게 밤을 보낸 것도 아닌데 더 많은 것을 얻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들 한다.
시와는 서부 사막에 잇는 오아시스 중의 하나다. 누구나 나그네가 되어 아무 것도 갖지 말고 이 사하라에서 지내보면 어떨까? 사람 마다 각자 가지고 있는 개념이 있을 테지만 이 사하라에서는 틀림없어 뭔가 많은 것을 찾고 얻게 될것이다.

우리는 다시 ‘샤와엠’으로 돌아와서 아침 온천 욕을 했다.
세상에 이 보다 더 좋은 욕조가 없으리…… 온 몸의 피로를 말끔히 털어내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죽음의 산(Death Mountain)으로 이동했다.
그 곳은 그야말로 ‘죽음의 산’ 이 아닌 ‘주검의 산’ 이었다. 옛적부터 있었던 무덤 군들 이었고 그 곳엔 몇 구의 미라가 있었다.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주검조차 편안한 안식을 취하지 못하나 싶어 마음이 아팠다. 아담한 유리관에 넣어 관광객들에게 보여줘도 될 텐데….
사하라에서 밤을 지내고 와서인지 우리들은 그 미라 앞에서 처연해졌다.

운전자 요셉은 시와 사람이라서 하는 말이 여느 이집트 아랍어 보다는 독특했다.
나와 애기 할 때는 괜찮은데 저희들 시와 사람들끼리 애기 할 때는 하나도 알아 들을 수 없는 ‘베르베르’ 방언을 사용했다.
시와는 오랜 동안 고립되어 있었기에 이집트에서 가장 특이한 문화와 풍습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사진을 찍자 하면 철이든 애들은 다 도망간다. 독특한 프라이드가 있다. 그 옛날 알렉산더 대왕도 이 시와를 특별히 여겨 이 곳에 있는 ‘아몬 신전’에서 신탁을 받아 완벽한 이집트의 파라오로써 백성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않았던가!
그 알레산더가 신탁을 받았던 ‘아몬 신전’, Oracle Temple을로 보러 갔다.
‘샬레’로부터 4km정도 떨어진 곳, ‘아구미르’ 지역에 있다.

요셉이 우리에게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으니 이름들을 알려 달란다. 그래서 요셉 뒤에 앉은 마담은 도도, 그 옆은 래래, 또 그 옆은 미미, 나는 파파 입니다. 했더니 그대로 따라 한다. 응, 도도, 래래, 미미, 파파… ? 그런데 좀 이상하단다.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리고 시치미 뚝 떼고 “도도” 하고 불렀고, 도도는 “에”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다른 차에 있는 는 마담들은 키 순대로 ‘솔솔, 라라, 시시’라고 했더니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도도, 래래는 어렵고. 미미, 파파는 쉽단다’ 해서 우리는 ‘요셉 좋을 대로 부르세요’ 하고는 모두 뒤집어 졌다. 그러는 사이 ‘아구미르’에 도착했고 그 때부터 우리는 도도, 래래, 미미가 되어 떠날 때까지 ‘도래미파솔라시도’였다.

‘샬레’뿐만 아니고 시와 전체가 기후의 변화에는 피해가지 못해서 해마다 많은 비가 내리고 대부분 흙으로 지은 집이라 곳곳이 무너지고 있었는데 ‘아구미르’도 마찬가지였다. 시와 전체가 새 집을 지어야 할 판이고 실지로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오라클 템플, 그 옛날에는 엄숙하고 장엄했으리라. 무너져 내린 모습이 쇠락해 갔던 고대 이집트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알렉산더 대왕은 어디에서 잠을 자고 있을까? 아몬 대사제들은 또 어디에 잠들어 있을까? 역사의 한 자락에서 역사를 이끌었던 그 주역들은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잠자고 있을까? 역사의 수레바퀴는 지금도 구르는데 …

오라클 템플을 보고나니 오후 2시다. ‘샬레’ 근처에 요셉 마누라가 하는 식당에서 그 동안 아껴온 마지막 남은 김치로 끓인 김치 국에 라면을 넣고 다시 끓여서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꿀 맛! 김치 라면 최고!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