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밝아오는 시내산 정상을 뒤로하고 우리는 하산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지체하면내려오는 길이 괴롭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하산 길을 햇볕이 사정없이 내려 쪼이기 때문이다.

내려올 때는 쉬지 않고 행군을 계속했다. 휴식을 취하면 다리 힘이 풀려 올라 갈 때보다 더 힘들기 때문이다. 두 갈래 길에서 호렙이 보이고 그 곳에 향나무인지? 이름 모를 사철 푸른 큰 나무들이 몇 그루 있고 시원한 지하수 우물이 있는 길은 일설에 의하면 엘리야가 이사벨을 피해 숨어 있었던 곳 중의 하나라고 전해 지고 있다.
호렙산과 시내산은 같은 줄기로 시내산은 해발 2285m 이라 하지만, 2천 던 3천 이던 높이가 뭐 그리 중요 한가? 우리는 성산을 올랐고 모세가 이 곳에 왔었고 그 뒤를 이어 세기가 수십 번 바뀌어도 순례 객들은 끊임 없이 이어지고 그 누군들 그 감동과 감명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 까? 단순한 등산과는 가슴에 와 닿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시내산 수도사들이 수 백 년에 걸려 만들었다는 3800개에 달하는 계단 길은 시간이 절약 되고 보는 풍치도 좋지만 내려가면서 자칫 실족하게 되면 굴러 떨어지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우리 일행은 올라왔던 길로 해서 다시 내려왔다. 경사도 완만하고 넘어질 위험은 없었지만 낙타 꾼들의 유혹이 대단하다. 한 시간 정도를 따라 내려 오면서,” 낙타 타세요, 낙타 타세요” 제법 유창한 한국 말로 끈질기게 달라 붙는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는 내려오는 길에 낙타를 타는 것은 사타구니 쪽을 압박하여 여간 힘들고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해서 그들의 유혹을 물리쳤고, 낙타 꾼들은 체념한 듯 휑하니 가버린다.

도중에 다시 한 번 정상을 올려다 본다. 봉우리 끝에 모세를 위해 지은 기념교회가 보인다. 이 교회는 1년에 단 몇 번 밖에 문을 열지 않는데 언제인가 나는 그 교회에 들어갈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었다. 아담한 채플이었다. 모세에 관한 성화가 사방으로 벽을 장식 하고 있었다. 그 곳에 들어 갔던 감격이 되살아난다. 나는 일행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몽사몽간에 올라갔었을 우리 일행의 무사한 산행을 감사했다.

캐트린 수도원을 관람할 예정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이날이 일요일 이어서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수도원 반대편 바위산에 올라가 전경을 내려다 보았다.
“수도원 안에는 성서에 나오는 불타는 떨기나무가 있다. 산딸기 나무를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는 예기를 해 줬더니 모두 다 고개를 끄덕인다.
언젠가 모세가 마셨다는 모세우물도 있고, 변화교회. 성서 필사본, 시내산 필사본을 발견하고 사제로부터 차용증서 까지 쓰고 빌려가 되돌려 주지 않고 러시아 ‘짜르’ 황제에게 전해준 튀쎈도르프 – 캐트린의 시신을 모신 황금 관,, 등등..

교회사 중 가장 먼저 수도원의 역사가 열린 곳이 이집트 이고, 그 많은 수도원들 중에
가장 성스러운 시내 산에 있는 곳이 카트린 수도원 아니던가! 성녀 카트린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각자의 탈란트(Talent)도 있겠지만 괴로운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문지기 직을 수행하다가 선종하신 한 수사님의 미라에서 묻어 나는 그 거룩한 삶을 우리는 같이 느끼고자 했다.

어떤 이는,”수도사들은 산속에 묻혀 수도만 하면 되겠느냐”고 하지만, 교회가 부패했을때 교회는 이들에 의해 거듭나기도 했었고. 그들은 세상 안에 있으되 세상에 속해 있지 않았고, 또한 세상 안에서 생활 했으되 세상(삶)을 초월해서 사는 사람들이지 않았던가?
거룩하고 성스러운 시내산에서 수도생활을 하기 위해 세기 이 후부터 이 곳에 온 사람들은또 얼마나 많았던가? 기적 같은 삶을 살았던 성녀 캐트린을 선두로 은둔자들의 삶은 또 어떠했던가? 단순히 어쩌고 저쩌고 하는 설명이 중요하지 않으리라. 내 마음속에 깨달음을 하나만 얻어 가더라도 그 무엇과 바꾸랴!

자연을 사랑하고 그 품에 사는 생활은 신의 게시를 받고 기품 있는 정신으로 살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지 않겠는가. 우리는 너무 쉽게 ‘힘들다.’하고 피곤해 하고, 남이 하니 나도 한다는 단순한 성지순례라면 차라리 이 곳에 오지 않는 게 나으리라.
어떤 때는, “모세야!” 하고 고함과 큰소리로 기도하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에 다른 나라에서 온 순례 객 들의 의아해 하는 표정을 나는 여러 번 목격했었다.

“ 주님. 애틋하게 당신을 찾으오니 깨달음을 주소서! 다른 이를 배려하는 조그마한
사랑이라도 좋습니다. “

새벽 한시에 기상하여 시내 산에 오르고 호텔에 돌아오니 아침 9시였다. 아침을 먹으면서 성산에 올랐던 느낌이 가시지 않았던지 모두들 무척 감격해 있었고 먹는 음식에서부터 감사함이 묻어났다. 이제 카이로로 떠나야 할 시간이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