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카펫, 화려한 수가 놓여진 쿠션을 의지해 느긋하게 드러누운 아름다운 여인. 어두운 조명아래 피어 오른 연기는 안개처럼 방안을 감싸고, 여인은 아름답게 장식된 유리병에 연결된 파이프에 손을 내민다.... 몽환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영화 속 장면 같지만 현실에서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바로 근래 유럽과 미주에서 대유행 중인 물담배 카페의 모습.


물담배는 500여년 전 인도에서 전파된 기호품이다. 물을 이용해 담배 연기를 한번 걸러 흡입하는 방식인데, 담배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데다 각종 향료를 첨가할 수 있어, 일반적으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향료의 종류만 해도 10가지가 넘으며, 대게는 사과, 포도, 딸기 등의 천연 과일 향을 사용하고 꿀이나 설탕을 첨가하기 때문에 향긋하고 달콤한데다, 그 향의 여운이 오래 남아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화려하게 장식된 물담배 병과 길게 이어진 호스, 그리고 비스듬히 걸터앉아 한 시간여에 걸쳐 느긋하게 흡입하는 느림의 미학까지 더해져, 외국인들의 눈에는 오리엔탈리즘의 극치로 느껴지는 모양이다. 처음 물담배가 소개되었던 제 2회 파리 박람회 이후 19세기 유럽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은 바 있다. 지금은 이 유행이 여행자들을 통해 번져, 캘리포니아나 동경까지 상륙, 물담배 전용 카페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중동지역에서 오랫동안 애용되어 오다 근래 들어서는 노년층에서 주로 피우는 것으로 치부되었던 물담배가 이렇게 각광받는 아이템으로 떠오른 것은 이집트 때문이다. 이집트는 하루 2천만 개피의 담배가 소모되는 최고의 애연국가이자, 물담배 최대 소비국 중의 하나다. 여성들이 일반 담배를 피우는 것은 불쾌하게 여겨지지만, 물담배 만큼은 대단히 관대해서, 이집트의 젊은 여성들까지 물담배 소비에 큰 몫을 해내고 있다. 부부가 나란히 거실에 누워 물담배를 피우는 것은 무척이나 일상적이고 다정한 풍경으로 비춰질 지경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여타 중동 지방에 비해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유명 관광지라는 것도 한몫 더해져, 여행자들에게 물담배 전파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물담배용 향료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근래에는 카푸치노 향, 콜라 향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물담배 전파를 주도한 이집트에서는 물담배 소비를 줄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물담배 카페가 속속 들어서고 있는 유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후카, 나그길레, 쉬샤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리는 물담배는 물이 필터 역할을 해 주는데다 그 농도가 낮고 연기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일반 담배보다 순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오해가 향긋하고 달콤한 향과 더불어 외국인들에게 인기를 끌게 된 요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순하다고 알려진 물담배는 오히려 건강을 악화시킨다고 한다. 1시간 정도 물담배를 피는 것은 거의 100~200개피의 담배를 피는 것과 같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호스를 통해 담배를 빨아 마시기 때문에 더 많은 양의 연기가 폐 깊숙이까지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물담배 속의 담배 물질에는 발암물질의 비율이 일반 담배보다 훨씬 높으며, 중독성 또한 더욱 강력하다는 의학잡지의 코멘트도 보도된 바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태원의 터키와 중동 음식점에서 조금씩 보이던 물담배가, 요즘에는 홍대 앞으로까지 진출했다. 물담배 카페가 들어선 것이다. 특유의 몽환적 분위기로 클러버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세계적인 물담배 유행에 동참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그러나 정작 이집트 보건부에서는 물담배의 세계적 유행을 걱정스런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물담배는 일반 담배에 비해 덜 해롭다는 잘못된 인식, 그리고 저렴한 가격과 사람들과의 교류에 이용된다는 이유로 점점 더 소비가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물담배는 대게 가내수공업 규모로 생산되고 있어, 정부차원의 품질관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크게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이집트 정부는 보다 강력한 물담배 소비 억제 정책을 고심 중이다. 조만간 이집트 내 널리 퍼져있는 물담배 전용 티하우스 입구에 이런 문구가 내걸릴지도 모를 일이다.